
2015년 개봉한 영화 《인턴(The Intern)》은 은퇴한 70대 남성과 30대 여성 CEO가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처음 볼 땐 가벼운 직장 코미디처럼 느껴지지만, 2025년 지금 다시 보면 세대 간 소통, 일과 삶의 균형, 좋은 어른의 역할을 생각하게 만드는 따뜻한 성인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나이, 성별, 직급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지를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1. 줄거리 요약 — 은퇴자의 두 번째 출근
● 시니어 인턴으로 다시 사회에 들어온 벤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는 70세의 은퇴자입니다. 평생 일해 온 회사를 떠난 뒤 아내까지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일상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던 중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 모집 공고를 보고, 인생 2막을 시작해 보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새로운 직장은 온라인 패션 쇼핑몰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평균 연령이 훨씬 낮은 젊은 회사에, 정장을 차려입은 70대 인턴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세대 차이가 드러납니다.
● 바쁘고 불안한 CEO 줄스와의 만남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는 회사를 직접 창업해 빠르게 키워낸 능력 있는 CEO입니다. 그러나 회사가 커질수록 업무는 폭주하고, 조직 내 갈등과 투자자들의 압박까지 더해지며 몸과 마음이 지쳐 있습니다. 처음에 줄스는 시니어 인턴 제도를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벤에게 단순한 허드렛일이나 맡기려 합니다. 하지만 벤은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묵묵히 주변을 돕고, 필요할 때 가볍게 한 발 나서는 태도로 조금씩 신뢰를 쌓아갑니다.
벤은 운전기사 역할을 자청하고, 사무실의 작은 문제들을 정리해 주며,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줄스의 고민을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세대는 다르지만, 서로에게 부족했던 한 조각을 채워주는 존재로 자리 잡습니다.
2. 인물로 읽는 영화 — 서로에게 필요한 조각
● 벤 — 품위 있게 나이 든다는 것
벤은 “내가 예전에 다 해봤다”라며 가르치려 드는 어른이 아닙니다. 먼저 관찰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부탁하지 않아도 필요한 일을 알아서 챙깁니다. 때로는 묵직한 한마디 조언을 건네지만, 그 이전에 충분히 들어주고 기다리는 사람이죠. 영화는 벤을 통해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의 존재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시대에 뒤처진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빠르게 변하는 조직 속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정서적 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줄스 — 완벽함에 갇힌 리더의 초상
줄스는 회사에선 뛰어난 CEO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려다 과부하에 걸린 사람입니다. 회사 성장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그 대가로 삶의 균형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죠. 투자자들은 전문 경영인 영입을 권하고, 남편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줄스는 겉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리더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내가 정말 이 회사를 계속 끌고 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에 시달립니다. 벤은 그런 줄스를 비난하지 않고, 그녀가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 주변 인물 — 현대 직장의 군상
회사 동료들은 빠른 속도와 성과에 익숙하지만, 동시에 감정적으로나 관계적으로 미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벤은 이 젊은 직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직장 내 소소한 갈등을 완화하는 완충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시니어 인턴’이라는 설정을 단지 웃음 포인트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다양한 세대가 함께 일할 때 생길 수 있는 건강한 관계의 모델을 보여줍니다.
3. 주제와 메시지 — 세대, 일, 삶을 잇는 다리
● 세대 간 소통, 결국 태도의 문제
《인턴》이 말하는 세대 간 소통은 거창한 담론이 아닙니다. 벤은 젊은 세대의 방식과 문화를 무조건 비판하지 않고, 이해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반대로 줄스와 직원들은 벤의 방식에서 진정성과 품위를 발견하며 조금씩 마음을 엽니다. 영화는 세대 갈등의 핵심이 “나이 차이”가 아니라, 서로를 규정짓는 태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 일과 삶의 균형 — 완벽함에서 ‘충분함’으로
줄스는 회사와 가정 모두에서 완벽하려다 한계에 부딪힙니다. 벤은 그녀에게 정답을 알려주려 하지 않고, 충실한 청자로 남습니다. 그 과정에서 줄스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모든 걸 다 잘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씩 벗어납니다. 영화는 일과 삶의 균형이란 거창한 목표라기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과정임을 조용히 들려줍니다.
● 인생 2막에 대한 다른 시선
벤의 인턴 생활은 은퇴 이후의 삶이 반드시 ‘쉼’만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는 다시 일터로 돌아와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감각을 되찾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 또 다른 성장을 경험합니다. 《인턴》은 나이를 이유로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는 사회 분위기에,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든 관계와 일의 의미는 다시 쓰일 수 있다”는 따뜻한 반론을 제시합니다.
4. 연기와 연출 — 가벼운 웃음 속에 남는 여운
로버트 드 니로는 벤 캐릭터를 통해 “중후함”과 “귀여움”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과장된 희극 연기가 아닌, 작은 표정과 몸짓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어른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앤 해서웨이는 커리어우먼의 카리스마와 불안, 죄책감, 외로움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현대 여성 리더의 복합적인 얼굴을 보여줍니다.
연출을 맡은 낸시 마이어스는 특유의 따뜻하고 세련된 톤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과도한 갈등이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인물들의 대화와 작은 행동만으로 감정을 축적해 나갑니다. 덕분에 영화는 부담 없이 웃으면서 보다가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조용한 생각거리를 남기는 작품이 됩니다.
결론 — 2025년에 다시 보는 《인턴》의 이유
《인턴》은 화려한 반전도, 극적인 눈물 장면도 없는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보다 “어떻게 함께 있을까”를 묻기 때문입니다. 세대, 성별, 직급, 역할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살아갈 때 무엇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지, 벤과 줄스의 관계를 통해 잔잔하게 보여줍니다.
2025년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단순한 직장 이야기나 힐링 영화가 아니라,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내 곁의 사람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
마무리 한 줄
《인턴》 — 세대는 다르지만, 서로의 삶을 조금씩 덜 힘들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