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The King’s Man, 2021)》는 킹스맨 시리즈의 프리퀄이자,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스파이 액션 영화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비기닝 스토리’로 보기엔 이 작품이 품은 주제의 깊이는 압도적입니다.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을 재해석하고, 첩보 조직의 탄생을 통해 권력, 정보, 윤리, 정의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 영화는 역사극의 외피를 쓴 정치철학적 텍스트에 가깝습니다.
2025년 오늘날, 우리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영화는 20세기 초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누가 세상을 움직이는가?” “정의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시대를 초월한 질문을 던집니다.
1. 전쟁과 정보의 은유 —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실체
《퍼스트 에이전트》는 전쟁의 본질을 ‘정보의 전쟁’으로 정의합니다. 물리적 무력보다 더 강력한 것은 정보이며, 누가 그것을 통제하느냐가 역사를 결정한다는 명제를 제시합니다. 영화 속 ‘목양자(The Shepherd)’는 제국주의에 대한 복수심으로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인물로, 그의 전략은 총과 폭탄이 아닌 ‘조작된 정보’입니다.
영국, 독일, 러시아의 최고 권력자들이 그의 손끝에서 조종되는 장면들은 정치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여론과 인식의 조작임을 보여줍니다. 옥스포드 공작이 이러한 음모를 막으려 하지만, 결국 아들을 잃고 정의를 향한 감정적 분노가 또 다른 비극을 부르는 과정을 통해 ‘감정적 정의’의 위험성을 고찰하게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 주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SNS, 가짜 뉴스, 데이터 조작, 정치적 이미지 메이킹 등 보이지 않는 정보 전쟁은 현실을 지배합니다. 《퍼스트 에이전트》는 100년 전의 이야기로 “보이는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는 날카로운 통찰을 전합니다.
2. 실존 인물의 재구성과 권력 풍자
이 영화는 실제 역사 인물들을 과감히 재구성하며 역사적 풍자와 비판을 병행합니다. 라스푸틴, 카이저 빌헬름 2세, 조지 5세, 니콜라이 2세 등 실존 군주들이 등장하며, 그들을 통해 권력의 부패, 광기, 그리고 인간적 허상을 드러냅니다.
라스푸틴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신비주의자이자 정치적 조종자로, 영화 속에서는 발레 같은 움직임으로 싸우는 광인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의 전투 장면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이성이 사라진 정치의 광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메타포입니다.
또한 영화는 세 나라의 군주(영국의 조지 5세, 독일의 빌헬름 2세,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를 모두 닮은 외모로 묘사함으로써 ‘권력의 근원은 국적이 아닌 혈통과 기득권’이라는 풍자를 던집니다. 그들은 서로 적국의 왕이지만, 실제로는 사촌 관계이며, 결국 한 뿌리의 권력이 유럽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상징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입니다. 형식은 달라졌어도, 권력은 여전히 소수에 집중되어 있고, 그들은 제도보다 더 강력한 ‘관계망’으로 세상을 움직입니다. 영화는 이 구조를 해학과 풍자로 그리며, 관객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권력은 정말 바뀌었는가?”
3. 킹스맨의 철학 — 품격과 윤리의 탄생
영화의 후반부에서 마침내 ‘킹스맨’ 조직이 탄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첩보단체의 출발이 아니라, ‘품격 있는 정의’를 실천하려는 철학의 탄생입니다.
조직의 모토인 “Manners Maketh Man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예의와 절제가 인간됨의 기준임을 강조합니다. 폭력보다 품격, 권력보다 책임. 이는 오늘날 언어와 정보의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더욱 울림 있는 선언입니다.
또한 구성원들이 ‘아서’, ‘랜슬롯’, ‘갈라하드’ 등 아서왕 전설의 이름으로 불리는 설정은 ‘개인’이 아닌 ‘이상’을 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감정이나 이익을 넘어서, 정의라는 가치를 대표하는 인물로 살아야 한다는 상징입니다.
본부가 ‘양복점’으로 위장되어 있는 점 또한 흥미롭습니다. 양복은 절제와 품격의 상징이며,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그 안에서는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곧 “진짜 권력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메시지입니다.
킹스맨은 ‘보여주는 정의’가 아닌 ‘지켜내는 정의’를 추구합니다. 국가 권력의 한계를 넘어선 독립적 감시자로서, 윤리와 책임의 균형을 지키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는 오늘날 언론, 시민단체, 공공기관 등 권력을 감시하는 주체의 존재 이유를 상징적으로 대변합니다.
결론 — 품격으로 세상을 지키는 자들의 이야기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단순한 액션 프리퀄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본질을 해부하고, 정의의 기준을 되묻는 철학적 영화다. 실존 인물의 재해석은 과거를 통해 오늘을 비추는 장치이며, 킹스맨의 탄생은 ‘무력보다 품격’을 중시하는 새로운 윤리의 시작을 알린다.
오늘날 정보의 흐름이 권력을 대체한 시대에, 이 영화는 묻는다. “누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가?” “진짜 정의를 감시할 자는 누구인가?”
《퍼스트 에이전트》는 그 답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숙제를 남긴다. 정의는 누가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품격은 오직 인간만이 스스로 지킬 수 있다.
💭 마무리 한 줄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총과 칼보다 강한 ‘신념의 힘’을 그린 영화다. 품격 있는 정의, 그것이야말로 킹스맨이 지키려 한 진짜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