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는 멀티버스를 배경으로 하되, 궁극적으로는 감정과 관계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아카데미 주요 부문을 휩쓴 이 작품은 단순한 SF 판타지가 아니라 현대인의 내면을 해부한 감정 철학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삶의 혼돈. 이 제목은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을 은유한다. 너무 많은 일, 너무 빠른 변화, 너무 복잡한 감정 속에서 ‘나’와 ‘우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1. 공허한 일상과 감정 회복의 여정
에블린은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이민자다. 세무조사, 가족 갈등, 언어 장벽,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그녀는 늘 지쳐 있고 감정을 잃은 상태로 살아간다. 남편 웨이먼드는 순하고 낙천적이지만, 그녀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지고, 딸 조이는 엄마와의 관계를 단절한 채 살아간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관계가 틀어지고, 감정은 고립된다.
이때 열린 멀티버스의 문은 단순한 SF 장치가 아니다. 내면의 붕괴를 시각화한 장면이다. 억눌린 감정이 한계에 다다른 순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 그녀는 수많은 ‘다른 자신’을 마주한다 — 배우, 요리사, 무술가, 돌멩이로 존재하는 자아까지. 그 모든 자아는 그녀가 외면했던 감정과 가능성의 파편이다.
특히 돌멩이 우주에서의 장면은 상징적이다. 언어도, 감정 표현도 사라진 세계에서 에블린과 조이(조부투파키)는 그저 나란히 앉아 존재한다. 이 장면은 말보다 깊은 위로를 전하며, 감정은 소리 없이도 연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는 ‘감정의 회복’이 곧 인간 존재의 근원임을 이야기한다. 감정은 극복해야 할 약점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게 만드는 힘이다.
2. 멀티버스 속 정체성 혼란과 자아 탐색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여정이다. 에블린은 아내, 딸, 엄마, 이민자, 세탁소 주인이라는 수많은 역할에 갇혀 있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오며 자신을 잃은 인간의 초상이다. 멀티버스 속 그녀의 다양한 자아는 정체성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다층적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놀랍게도, 어떤 우주의 에블린도 완벽하지 않다. 성공한 배우로서의 삶은 외롭고, 무술가로서의 삶은 감정이 메말라 있다. 요리사의 삶은 불안과 경쟁 속에 갇혀 있다. 이는 곧 삶의 선택에는 언제나 결핍이 따른다는 메시지다. 완벽한 삶은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한편, 딸 조이의 또 다른 자아 ‘조부투파키’는 모든 차원을 경험한 끝에 ‘무의미’에 빠진 인물이다. 그녀의 “검은 베이글”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공허의 상징이다. 모든 가능성을 본 결과, 아무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 — 이는 현대 젊은 세대의 실존적 피로와 닮아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게 소용없다”는 감정. 조부투파키는 바로 그 공허의 화신이다.
에블린은 이 무의미의 세계에서 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자아를 통합해야 한다. 그 여정 끝에서 그녀는 깨닫는다. 진짜 자아란 완벽한 선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 사랑을 선택할 때 탄생한다.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3. 베이글과 ‘무(無)’의 상징, 그리고 삶의 회복
검은 베이글은 영화의 핵심 상징이다.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 과잉된 정보와 선택이 낳은 현대인의 공허를 표현한 장치다. 끊임없이 더 많은 가능성을 추구할수록 우리는 방향을 잃고 자신을 잃는다.
그러나 에블린은 깨닫는다. 이 무를 이기는 건 폭력이 아니라, 이해와 사랑이다. 그녀는 조이에게 말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너를 사랑해. 그건 변하지 않아.” 이 한마디는 영화 전체를 꿰뚫는 진심이다. 세상 모든 것이 무의미해도, 서로를 향한 감정이 의미를 만든다.
멀티버스의 끝에서 에블린은 ‘특별한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얻는다. 이것이 영화의 핵심이다. 무수한 자아를 통합해 돌아온 그녀는, 이제 ‘지금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결론 — 멀티버스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의 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여기, 당신이 느끼는 감정과 함께 있는 사람이 곧 우주의 중심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서도 진짜 중요한 건 현재의 삶과 관계다.
조부투파키는 모든 가능성의 끝에서 무기력해졌지만, 에블린은 모든 혼돈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한다. 그 대비를 통해 영화는 묻는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회복의 시작이다.
디지털 피로와 사회적 단절이 깊어지는 시대에 이 영화는 조용히 속삭인다. “당신은 괜찮다. 모든 게 너무 많아도, 지금의 당신으로 충분하다.”
💭 마무리 한 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멀티버스의 혼돈 속에서 결국 사랑과 감정이 인간 존재의 중심임을 증명한 감정 철학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