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Triangle of Sadness, 2022)》는 럭셔리 요트와 무인도라는 상반된 공간을 통해 인간 사회의 계급 구조가 얼마나 허약하고 가변적인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상류층의 위선, 명품 소비문화, 젠더 권력, 생존 본능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우리가 믿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성공의 기준’이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지를 폭로한다. 단순한 풍자 코미디가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사회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1. 명품과 권력이 전복되는 순간 — 사회 구조의 허상
이 영화는 모델 커플 칼과 야야의 관계로 시작된다. 외모와 SNS 팔로워 수가 경제력과 동일시되는 시대, 브랜드와 이미지를 통해 관계의 위계가 정해지는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성공한 젊은이’처럼 보이지만, 그 정체성은 소비와 이미지로 만들어진 가짜 자아에 불과하다.
요트에는 억만장자, 무기상, 앱 창업자, 패션 인플루언서 등 상류층이 탑승하지만, 그들을 실제로 움직이는 건 하층민 크루들이다. 그러나 사고로 무인도에 고립되자 모든 위계가 뒤집힌다. 평소 하인으로 무시받던 청소원 아비게일이 생존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리더가 되고, 상류층은 무력한 존재로 전락한다. 명품도, 돈도, 권력도 생존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 계급 붕괴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우리가 신뢰해온 ‘서열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진짜 가치는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쓸모 있는가로 결정된다. 이 변화는 ‘쓸모가 곧 권력’이 되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은유한다. 특히 MZ세대에게 이 메시지는 현실적이다 — SNS 속 ‘보여지는 나’가 아니라, ‘생존력 있는 나’로서의 자아를 성찰하게 한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상징 자본(symbolic capital) — 명품, 직책, 지위 — 이 모두는 이 영화 안에서 철저히 무력화된다. 무인도에서는 생존 기술만이 유일한 권력이다. 이 영화는 과잉 소비와 비교 중심의 세상이 사라질 때 ‘무엇이 진짜 인간을 남기는가’를 근본적으로 묻는다.
2. 인간은 권력을 가지면 변하는가 — 지배자의 얼굴
무인도에서 새로 등장한 권력자는 아비게일이다. 그녀는 평소에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지만, 환경이 바뀌자 생존을 쥔 자로 변모한다. 처음에는 생존을 이끄는 합리적 리더였지만, 점차 독점적이고 통제적인 태도로 변화하며 권력의 본질은 인간의 본성을 시험한다는 명제를 증명한다.
아비게일은 생선 분배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섹슈얼리티를 이용해 새로운 위계를 만든다. 이전에는 상류층에게 복종하던 그녀가 이제는 그들을 지배하고 조종한다. 푸코의 권력 이론처럼, 권력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 속 관계의 흐름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권력이 주체를 바꾸면, 시스템은 그대로 재생산된다.
이전의 상류층이 새 체제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은 인간의 순응성과 기득권 의존성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이 영화는 묻는다 — “우리는 자유를 원하지만, 동시에 지배받기를 원하지 않는가?” 권력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아비게일의 변모는 ‘권력의 윤리’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보여준다.
3. 웃음은 불편할수록 진실에 가깝다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가 뛰어난 블랙코미디인 이유는 관객이 웃으면서도 동시에 불편함과 자책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점이다. 요트에서의 구토, 멀미, 혼란 장면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상류층의 위선과 통제력 붕괴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는 이전 작품 《더 스퀘어》에서도 ‘예술계의 위선’을 유머로 해부한 바 있다. 그는 관객이 불편할 때 가장 강한 메시지가 전달된다고 믿는다. 이 영화에서도 웃음은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도덕적 자각을 유도하는 도구다.
야야의 화려한 패션은 부러움을 자극하지만, 그녀의 냉정함은 혐오를 부른다. 칼의 순응적 태도는 남성성의 불안을 보여준다. 관객은 웃으며 불편해하고, 그 감정의 교차 속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결국 웃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의 통로다. 진짜 웃음은 우리가 숨기고 싶은 진실에서 나온다. 이 영화는 웃음을 통해 관객 스스로의 위치와 역할을 돌아보게 만든다.
결론 — 시스템이 무너질 때 진짜 내가 드러난다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는 단순한 계급 풍자를 넘어선 사회철학적 선언문이다. 자본, 권력, 성별, 명품, 사회 질서 등 우리가 신뢰하는 모든 외형적 가치가 얼마나 쉽게 붕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계급은 인위적이고, 위계는 언제든 무의미해질 수 있다. 이 메시지는 무인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 오늘날의 기업, 사회, 인간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영화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 민낯은 우리가 꾸며온 정체성과 역할 뒤에 숨겨진 ‘진짜 나’다.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생존력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는 이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관객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든다.
💭 마무리 한 줄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는 웃음으로 인간의 허위를 드러내는 잔혹한 거울이다. 계급이 사라진 자리에서 남는 것은, 결국 인간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