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스퀘어》는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가 2017년 발표한 풍자 드라마이자, 현대 사회의 도덕과 예술을 동시에 해부한 작품입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예술이 어떻게 윤리와 책임의 언어를 빌려 자신의 위선을 숨기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영화 속 ‘더 스퀘어(The Square)’는 “모두가 평등하고,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선언으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현실 속 그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차별과 위선, 냉담함의 상징으로 변합니다. 감독은 이 역설을 통해 묻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공공성은 진짜 연대인가, 아니면 자기 위안의 장식인가?”
1. 예술이라는 공간 – 선언과 실천의 괴리
1) 선언으로서의 ‘더 스퀘어’
영화의 중심에 놓인 설치미술 작품 ‘더 스퀘어’는 마치 도덕의 성역처럼 묘사됩니다. 작품의 설명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각형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며,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속 인물 중 누구도 이 선언을 실천하지 않습니다. ‘더 스퀘어’는 공공성의 상징이 아니라, 공허한 구호로 전락합니다. 감독은 그 공간을 ‘선언의 무덤’으로 그리며, 현대 사회에서 윤리적 언어가 얼마나 쉽게 소비되는지를 비판합니다.
2) 관장 크리스티안의 위선
미술관 관장 크리스티안(클라에스 방)은 예술적 이상을 말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도덕과 거리가 멉니다. 노숙자에게 동전을 던지며 선의를 가장하고, 도둑을 색출하기 위해 아파트 전체에 협박장을 돌립니다. 그의 행위는 정의나 윤리와 무관한, 철저히 자기보호적 본능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공공의 이익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개인의 이미지 관리에 몰두합니다. 감독은 크리스티안을 통해, 권력을 가진 자가 ‘윤리’를 행동의 원칙이 아니라 브랜드의 장식으로 사용하는 현실을 드러냅니다.
2. 도덕의 작동 방식 – 권력과 책임의 비대칭
1) 책임을 회피하는 도덕
크리스티안은 영화 내내 “옳은 일”을 말하지만, 그 말의 끝에는 언제나 회피가 있습니다. 지갑과 휴대폰을 도난당했을 때 그는 합리적 절차 대신 감정적 대응을 택합니다. 수백 가구의 우편함에 협박문을 돌리고, 아무 죄 없는 소년을 몰아붙입니다. 결국 그 아이는 공포에 떨며 울음을 터뜨리지만, 그는 끝내 사과하지 못합니다.
이 장면은 현대 사회에서 ‘도덕’이 어떻게 권력자의 자기합리화 도구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도덕은 약자에게는 구속이지만, 강자에게는 선택 사항입니다. 그 비대칭이야말로 외스틀룬드가 가장 날카롭게 파고드는 지점입니다.
2) 도덕의 탈정치화
크리스티안은 자신을 “도덕적 리더”로 포장하지만, 문제의 책임은 항상 타인에게 전가합니다. 논란이 된 바이럴 광고가 공개되자 그는 “내가 승인한 게 아니다”라며 책임을 피하고, 언론 앞에서는 ‘오해가 있었다’며 사과 아닌 사과를 반복합니다.
감독은 이런 태도를 통해 도덕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비정치적으로 변질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즉, 윤리는 구조를 바꾸지 못한 채, ‘개인의 이미지 관리’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3. 공공성과 위선 – 연출된 진정성과 마케팅의 윤리
1) 도덕의 상업화
영화 후반부, 미술관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며 충격적인 광고 영상을 공개합니다. 가난한 아이가 폭발에 휘말리는 그 영상은 “사회적 무관심에 대한 비판”을 표방하지만, 실제 목적은 명확합니다. ‘논란을 통한 홍보’입니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예술과 자본의 결탁을 조롱합니다. 관객과 언론은 영상의 윤리성보다 그 자극적인 연출에 열광하며, 예술은 진정성을 잃은 채 ‘이슈 생성 장치’로 소비됩니다. 그 과정에서 도덕은 완전히 비워지고, 남는 건 브랜드로서의 윤리뿐입니다.
2) 진심 없는 사과와 이미지의 통치
크리스티안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보인 사과는 전형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의 재현입니다. 그의 언어는 사과가 아니라, 이미지 회복을 위한 포즈입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기업과 정치, 예술계에서 반복되는 사과의 공허함을 풍자합니다. 외스틀룬드는 ‘도덕’이 언제부터 진심보다 퍼포먼스가 되었는지를 관객에게 묻습니다.
4. 인간의 위선 – 불편한 유머와 불완전한 연대
1) ‘불편함’으로 드러나는 진실
《더 스퀘어》는 시종일관 불편합니다. 노숙자에게 돈을 주며 ‘착한 일’을 하는 장면조차 위화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외스틀룬드는 관객에게 죄책감을 유발하며, 우리가 ‘선의’라고 부르는 감정조차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깨닫게 합니다.
2) 연대의 실패와 인간의 본성
‘더 스퀘어’ 안에서조차 인간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합니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해도, 사람들은 시선을 돌립니다. 공공성과 연대는 선언될 뿐,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감독은 이를 통해 “도덕은 구조가 아니라, 감정의 장식일 뿐이다”라는 냉소를 드러냅니다.
5. 예술의 아이러니 – 비판하는 예술이 닮아버린 대상
《더 스퀘어》의 탁월함은 예술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예술의 모순을 닮아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예술 마케팅’처럼 느껴질 정도로 세련되고 계산적이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 영화조차 또 다른 도덕적 소비물이 아닌가?”라는 자의식적 질문을 남기죠.
결국 영화는 예술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그 질문을 소비하는 관객의 책임까지 확장시킵니다. 우리가 타인의 불행을 ‘의미 있는 예술’로 감상하는 순간, 그 행위 자체가 영화 속 인물들의 위선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6. 결론 – 도덕의 언어로 포장된 자기기만
《더 스퀘어》는 예술계의 문제를 넘어, 현대 사회 전체의 윤리 구조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공공성, 연대, 책임이라는 단어는 아름답게 들리지만, 그 속에는 이익과 이미지, 권력의 논리가 얽혀 있습니다. 외스틀룬드는 냉소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도덕을 믿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이길 원한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불쾌함을 남기지만, 그 불쾌함이야말로 진정한 성찰의 시작입니다. ‘더 스퀘어’의 사각형 안에서 평등을 말하던 인물들은 결국 그 바깥에서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했습니다. 우리는 과연 그들과 다를까요?
💭 마무리 한 줄
《더 스퀘어》 — 도덕의 언어로 꾸며진 위선의 무대, 그 안에서 웃는 우리는 진정한 관객인가, 공범인가.